프레골리 증후군(Fregoli Syndrome)은 환자가 주변의 다양한 사람이 사실은 동일 인물이며 변장하거나 위장해 자신을 따라다닌다고 믿는 망상적 심리 장애다. 이 증후군은 대개 조현병이나 편집형 망상장애, 외상성 뇌손상 환자에게서 나타나며, 현실 검증 기능의 심각한 손상과 함께 사회적 고립 및 공격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다. 본 글에서는 프레골리 증후군의 기저 원인, 주요 증상, 진단 기준 및 신경학적 메커니즘을 상세히 다루고, 효과적인 치료 접근법을 제시한다.
낯선 얼굴 속에 감춰진 익숙한 그림자
프레골리 증후군(Fregoli Syndrome)은 기괴하면서도 심각한 정신병적 증상 중 하나로, 환자가 여러 명의 사람을 동일 인물로 착각하는 망상을 갖는 증상이다. 이들은 특정 인물이 다양한 모습으로 위장하거나 다른 사람으로 변신해 자신을 감시하거나 해치려 한다고 믿는다. 이 착각은 단순한 혼동이 아니라, 현실과 자아 인식 간의 경계가 붕괴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증후군의 명칭은 20세기 초 이탈리아 배우 레오폴도 프레골리(Leopoldo Fregoli)에서 유래되었다. 그는 극 중에서 빠르게 의상을 바꾸며 다양한 인물을 연기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러한 ‘동일 인물의 위장된 반복 등장’이라는 개념이 증후군의 본질을 상징한다.
프레골리 증후군은 조현병, 편집형 망상장애, 외상성 뇌손상, 알츠하이머병 등과 연관되어 나타날 수 있으며, 망상적 사고의 일환으로 환자의 사회적 관계와 일상생활에 심각한 장애를 초래한다. 이번 글에서는 이 증후군의 발생 배경과 신경학적 기전을 파헤치고, 치료적 접근을 통해 어떻게 회복이 가능한지를 다룬다.
변장한 그 사람이 또 다시 나타났다, 망상의 구조와 원인
프레골리 증후군의 핵심은 ‘하나의 인물이 여러 사람으로 위장되어 반복적으로 나타난다’는 착각이다. 환자는 낯선 사람도 특정한 태도, 목소리, 행동 등을 통해 자신을 괴롭혔던 특정 인물이라고 믿는다. 이는 실제 기억이나 현실적 증거와 무관하게 환자의 주관적 확신에 의해 굳어진다.
이 증후군은 다음과 같은 원인과 관련이 깊다:
- 측두엽 기능 이상: 얼굴 인식 및 감정 해석 기능이 왜곡됨
- 편도체-전두엽 연결 약화: 위협 판단과 현실 검증 기능의 저하
- 도파민 과잉: 망상적 해석과 착각을 증폭시킴
- 외상 후 해리 반응: 특정 인물에 대한 트라우마가 반복 투사됨
프레골리 증후군은 종종 ‘카프그라 증후군’과 비교되기도 한다. 카프그라는 가까운 사람이 가짜로 대체되었다고 믿는 반면, 프레골리는 낯선 사람이 실제로는 알고 있는 사람이라고 착각한다는 점에서 대조적이다. 이 두 증후군은 모두 ‘착각망상(Delusional Misidentification Syndrome, DMS)’의 하위 유형으로 분류된다.
임상적으로 프레골리 증후군은 다음과 같은 증상을 보인다:
- 반복적 동일 인물 망상: 다양한 인물이 사실 한 사람이라고 주장
- 과잉 해석: 말투, 복장, 눈빛 등 사소한 단서를 왜곡 해석
- 감시 및 피해 망상: 특정 인물이 자신을 따라다니며 위협한다고 느낌
- 공격성 또는 회피 행동: 위험 회피를 위한 비이성적 반응
- 지속적 불신과 불안: 타인과의 관계 형성 실패
이 증후군이 장기화되면 사회적 고립, 직업 기능 상실, 자살 사고 또는 타인에 대한 공격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어 조기 개입이 매우 중요하다.
모든 얼굴이 한 사람으로 보일 때, 현실을 회복하는 법
프레골리 증후군은 단순한 착각을 넘어선 망상의 구조적 고착으로, 환자의 삶 전체를 왜곡시키는 심각한 정신병적 현상이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선 신경학적 기반의 이해와 함께 정서적 지지를 결합한 다각도의 치료 접근이 요구된다.
1차적으로는 항정신병 약물(antipsychotics)을 활용한 약물 치료가 핵심이다. 도파민 수용체 조절을 통해 망상의 강도를 완화시키며, 동시에 불안 및 분노 반응도 안정화시킨다. 약물로는 리스페리돈, 올란자핀, 아리피프라졸 등이 사용된다.
이와 병행하여 인지행동치료(CBT)는 환자가 왜곡된 사고 패턴을 인식하고 현실을 다시 구성할 수 있도록 돕는다. 특히, 현실 검증 훈련(reality testing)과 상황 노출 훈련을 통해, 환자가 자신이 믿는 내용이 비합리적이라는 점을 스스로 자각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정신사회적 개입도 매우 중요하다. 안정적인 사회적 환경 제공, 보호자의 지지, 외부 자극 통제, 그리고 일상 루틴 복원은 환자의 심리적 안전망 형성에 기여한다. 자극을 줄이고 예측 가능한 일상을 제공하는 것이 회복의 핵심이다.
프레골리 증후군은 ‘누군가가 계속 따라다닌다’는 깊은 불신의 투사이며, 그 내면에는 과거의 상처, 현실의 혼란, 자아의 위기가 얽혀 있다. 그러므로 이 증후군은 단순히 환각의 문제가 아니라, 자아 방어 기제가 왜곡된 형태로 드러난 복합적 심리 증후군이다.
환자의 눈앞에서 낯선 얼굴들이 모두 같은 사람으로 보이는 그 순간, 우리는 그들에게 ‘현실은 다르다’는 메시지를 조심스럽고 반복적으로 전해야 한다. 회복은 느릴 수 있지만, 현실로 향하는 길은 언제나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