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리성 둔감 증후군은 자신이 경험하는 감각—예컨대 통증, 촉감, 감정 등—이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처럼 낯설게 느껴지는 해리성 장애의 한 형태입니다. 이 증상은 정신적 외상이나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 이후 나타나는 방어적 심리 구조로, 자아와 감각 간의 연결이 일시적으로 단절되는 현상입니다. 본 글에서는 해리성 둔감 증후군의 주요 증상, 발생 원리, 해리 현상의 신경심리학적 배경, 그리고 통합적 회복을 위한 심리치료 전략을 탐색합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낯설게 느껴질 때
손끝에 닿는 물건이 생경하게 느껴지고, 누군가 나를 부르는데도 그 이름이 나와는 무관하게 들립니다. 웃고 있는데 감정이 따라오지 않고, 눈물이 흐르는데 슬픔이 실감나지 않습니다. 이런 현상을 겪는 사람은 흔히 이렇게 말합니다. “감정은 있는데, 마치 그게 남의 일 같아요.” 이것이 바로 해리성 둔감 증후군(Dissociative Numbing Syndrome)의 세계입니다. 이 증후군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해리성 장애, 우울 장애 등과 함께 나타나는 증상군으로, 감각적 또는 정서적 자극이 자신과 분리되어 느껴지는 현상입니다. 말하자면, 자아가 감각과 단절된 상태로 존재하며, 이는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심리적 마비’이기도 합니다. 본 글에서는 해리성 둔감 증후군의 발생 배경과 감정-신체의 분리 메커니즘, 그리고 이러한 증상이 삶과 자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심도 있게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그 치유의 과정 역시 ‘느껴지지 않는 것들을 다시 느끼는’ 섬세한 여정을 중심으로 구성해보려 합니다.
감각은 살아있는데 자아는 거기 있지 않다
해리성 둔감 증후군의 가장 핵심적인 특징은 ‘감각의 소외’입니다. 이는 감각 기능이 손상된 것이 아니라, 그 감각을 받아들이는 자아의 인식 구조가 일시적으로 차단된 상태입니다. 흔히 환자들은 “내 몸이 내가 아닌 것 같다”, “행동은 하는데 내가 하는 것 같지 않다”고 말하며, 이는 해리성 이인증(depersonalization)과 유사한 특징을 보입니다. 이 증상은 외상적 경험 후 자아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감각 체계를 ‘끊어내는’ 방식으로 발생합니다. 예를 들어, 심각한 폭력이나 학대, 감정적으로 너무 큰 고통을 겪은 경우, 그 고통을 느끼지 않기 위해 감각 자체를 차단해버리는 것입니다. 이는 무의식적 방어기제로 작동하며, 당시에는 생존을 위한 전략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감정 기능의 마비와 자아 일체감 상실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신경과학적으로는 전전두엽(prefrontal cortex)과 편도체(amygdala) 사이의 연결 이상이 주요 원인으로 지목됩니다. 감정을 처리하는 편도체는 외상 이후 과도하게 활성화되며, 전전두엽은 이 반응을 억제하기 위해 감정 인식 기능 자체를 차단하는 반응을 보입니다. 이로 인해 감정과 감각은 뇌 내에서 정보 처리되지 못하고 단절 상태에 머무르게 됩니다. 심리적으로는 자기 감정에 대한 회피 경향이 강한 사람, 완벽주의 성향, 정서 표현이 억제된 환경에서 자란 사람에게서 해리 증상이 더욱 빈번하게 나타납니다. 감정을 느끼는 것 자체가 위험하거나 위협으로 인식될 때, 감각은 억눌리고 그 억눌림은 둔감증으로 전환됩니다. 문제는 이 둔감 상태가 지속되면, 삶의 모든 경험이 ‘내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 현상으로 확대된다는 점입니다. 감정의 반응성 저하, 정서적 거리감, 인간관계의 공허함, 현실과의 이질감이 심화되며, 자아의 일관성이 붕괴되기 시작합니다. 이는 곧 우울, 해리성 기억 상실, 자해 행동,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느끼지 못했던 감정을 다시 품는 연습
해리성 둔감 증후군은 감정과 감각의 단절로 인해 자아와 현실이 멀어지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그 단절은 회피가 아니라,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자아의 ‘생존 방식’이었다는 점에서 깊은 이해와 존중이 필요합니다. 즉, 우리는 그 단절을 비정상으로 보기보다, 한 시기의 자아가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고유한 전략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회복은 단절을 다시 연결하는 과정이며, 느껴지지 않는 것들을 조금씩 ‘안전하게’ 느끼도록 돕는 정서적 재훈련이 중심이 됩니다. 여기에는 감정 인식 훈련, 감각 집중 훈련, 표현 중심의 예술치료(미술, 음악, 신체 표현 등), 그리고 자기 공감 훈련이 포함됩니다. 특히, 몸을 매개로 감정을 회복하는 ‘신체 기반 치료’가 큰 효과를 발휘합니다. 요가, 명상, 심호흡, 감각 자극(냄새, 촉감, 온도) 등은 자아와 감각의 연결을 다시 조율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심리치료에서는 치료자의 지속적인 공감과 감정 반영이 환자의 내면을 다시 통합하는 데 핵심적인 자원이 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환자 스스로가 “나는 다시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감정을 느끼는 것은 결코 위험한 일이 아니며, 오히려 살아 있다는 증거이며, 관계와 삶을 이어주는 유일한 통로입니다. 해리성 둔감 증후군은 감정을 봉인한 자아가 다시 세상과 연결되려는 신호일지도 모릅니다. 그 봉인을 조금씩 열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나의 감각’으로 세계를 느끼고, ‘나의 감정’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